역사를 배우고 체험하는 스터디 투어 : 세계유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폴란드)

제 2차 세계대전중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세운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전쟁중 유대인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수용되어 가혹한 노역을 강요받았습니다. 어째서 전쟁기간 유럽 전역에서 홀로코스트의 학살로 인한 600만이 넘는 희생이 나왔는지, 아우슈비츠는 어떤 장소였는지, 의미를 되짚기 위해 피스보트 크루즈에서는 매년 이곳을 방문하는 스터디 투어를 개최해 왔습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구 폴란드의 수도 크라쿠프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도시 크라쿠프는 과거 500년 이상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입니다. 지금도 도시는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축물들이 남아있어 구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중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전화로 인한 피해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크라쿠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심한 피해를 받았습니다. 구 유대인 거주지였던 카시미에슈지구에는 당시의 피해로 인해 훼손된 건물 등이 그대로 있어 전쟁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외 이곳은 많은 유대인들을 구명한 오스카 쉰들러를 기리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기억을 전하는 수용소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수용소. 전쟁 당시 이 2곳의 수용소는 유럽각지에서 끌려온 포로들의 종착지로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포로는 거의 없다고 전해집니다. 전쟁의 비참한 기억을 잊지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곳 수용소는 현재는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곳 수용소에서는 전쟁당시 개인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집단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인간의 약함과 본질 등, 전쟁당시의 비참한 기억과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다양한 과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수용소에서 희생된 수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실제는 이름이 있는 누군가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다시금 가르쳐 줍니다.

수용소의 현실

수용소의 입구에는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를 얻는다)」는 전쟁 당시의 표어가 그대로 걸려있어 수용소를 상징하는 장소 중 한 곳입니다. 포로들에게 열심히 노역에 종하사면 해방된다는 것을 주입시키며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였습니다. 수용소 내부의 전시실에는 당시 수용된 포로들의 옷과 구두, 식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물들을 주의깊게 보면 각각 이름과 주소, 차량번호등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당시 나치 독일은 이를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수 있다고 수용된 사람들을 선전한 도구로 활용했다고 알려집니다.

현지의 젊은이들과의 교류 

이 2 곳의 수용소가 있는곳은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이라는 도시입니다. 이 지명도 전쟁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독일어로 아우슈비츠로 바뀌어 아직도 이곳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스터디 투어에서는 현지의 학생들과도 교류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곳은 아우슈비츠가 아닌 우리들이 태어나고 아름다운 도시이며 아우슈비츠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아픈 과거는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이를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전쟁의 비참함에서 평화로, 아우슈비츠

이번 투어에서는 독일 튀빙겐 대학의 학생들이 승선하여 독일의 전쟁사에 대한 프로그램을 개최하였습니다. 독일의 역사인식에 대해서 독일의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은 쉽지 않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과거 가해자였던 자신들을 잊지 않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가는 독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PHOTO: PEACEBOAT, yuruki Shi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