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한바퀴의 거리는 몇 킬로? 지구 한바퀴 일주 항해의 역사

2021/3/19

7개의 바다를 항해하며 세계 각지의 항구를 방문하는 지구 일주 유람은 이 별의 크기를 직접 느끼보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지구 일주 거리는 몇 킬로일까요? 지구 일주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요? 그동안 30년 이상 지구일주 크루즈여행을 기획하고, 실제로 세계 각지를 방문한 피스보트만의 시각으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내고 항해의 역사와 뱃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명소들을 소개합니다.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의외로 잘 모르는, 지구를 돌아보는 여행을 떠나보세요.

지구 일주의 거리는 몇 킬로?

지구일주의 거리(외주)는 약 4만 킬로미터입니다. 이는 18세기 후반, 길이의 국제기준이 정해졌을 때 지구 둘레의 길이를 기초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이 미터법으로 1m의 길이는 적도에서 북극까지 거리의 1000만분의 1로 정해졌습니다. 극점에서 적도까지 1만 킬로미터이므로, 지구 일주 거리를 구하려면 그것을 4배하면 되는 것이지요. 지구는 완전한 구체가 아니라 극방향으로 약간 찌그러진 형상을 하고 있으며, 지구를 남북으로 나누는 적도와 양극을 잇는 자오선에서는 거리가 다릅니다. 적도의 길이가 약 4만 75km, 자오선의 길이가 약 4만 9km에 달합니다.

세계 최초로 지구 일주의 거리를 조사한 인물은 에라토스테네스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일주의 거리를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학자였습니다. 당시 학문의 중심 역할을 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이기도 했던 에라토스테네스는 이집트 남부 도시 시에네(현재 아스완)의 우물 수면에 하지날 정오에만 햇빛이 비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에네보다 북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우물에서는 같은 시간에 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하지일 정오의 태양 위치(각도)와 두 지점의 거리를 측정하여 지구 일주 거리를 계산하였습니다. 그가 산출한 지구 둘레는 약 4만6000킬로미터로 실제 거리와의 오차는 약 15%였습니다.

지구 일주에는 며칠이 필요할까요?

지구 일주 약 4만 킬로미터를 돌려면 대략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피스보트의 항해에서는 100여일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게 되지만,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배나 철도를 이용하여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소설로, 교통수단의 발달에 의해서"대여행 시대"가 개막된 19 세기 후반의 세계 일주 내용의 소설입니다. 덧붙여 이 소설의 작가를 기념해 세계 일주의 시간을 겨루는 레이스는 「줄·베른·트로피」라고 이름 붙여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최단 기록은 40일 23시간 30분 30초, "80일간 세계 두 바퀴"가 실현될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세계 최초로 지구 일주를 달성한 마젤란 함대

세계 최초로 지구 일주를 달성한 것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함대입니다. 1519년 스페인을 떠난 마젤란 함대는 대서양을 가로지르고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서쪽으로 항해하였습니다. 마젤란은 1521년에 필리핀의 세부섬에서 목숨을 잃게 되어 지구 일주는 완수하지 못했지만, 남겨진 승무원들은 계속해서 항해하여 1522년에 스페인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약 3년의 세월에 걸쳐 사상 최초의 지구 일주를 달성하였습니다. 빛나는 공적 뒤에는 타지에서의 약탈 행위와 강제 개종 등 침략자로서의 측면도 있지만, 그의 함대에 의한 지구일주 달성은 항해의 역사에서 새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마젤란 함대의 지구 일주로 밝혀진 태평양의 크기

이 지구 일주 항해에 의해서, 마지막 미지의 대양이었던 태평양의 크기가 밝혀졌습니다. 사실 태평양의 마젤란이 지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구 일주 도중 남미대륙 남단의 마젤란 해협을 빠져나와 태평양으로 들어섰을 때, 대서양에 비해 매우 온화하며 평화로운 바다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라틴어로 'Mare Pacificum (평온한 바다)'을 번역할 때 영어로는 'Pacific(평온한)'이라는 뜻의 '태평'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남미대륙의 남단에 위치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해협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마젤란 해협이라고 불립니다.

지구 일주를 두 번 달성한 사람은?

마젤란 함대의 지구 일주 달성 이후 서양 열강들의 해양 진출은 더욱더 활발해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구 일주의 달성을 위한 방법은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마젤란 함대의 지구 일주 달성 후 약 반세기, 스페인의 선교사 마르틴 이그나시오 데 로욜라는 사상 처음으로 생애에서 2번의 지구 일주를 달성합니다. 재승선하는 분들이 많은 피스보트 크루즈에서는 몇 번이나 지구 일주를 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큰 위업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첫 번째 지구일주(1580~1584년)는 서향, 두 번째 지구일주(1585~1589년)는 동향으로 다른 방향으로 지구일주를 이룬 첫 인물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지구일주를 달성한 여성의 일주 기간이 약 10년!?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는?

여성 최초로 지구 일주를 달성한 사람은 프랑스 출신의 잔 발레입니다. 그녀는 1766~1769년에 걸쳐 행해진 루이 앙투안 드 부건빌의 지구 일주 항해에 식물학자의 조수로 참가하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항해는 여성에게 금기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성별을 속여 남자로 승선했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항해 여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타히티에서 여성인 것이 발각되어, 그 후 인도양의 모리셔스에서 그녀는 하선하게 됩니다. 그 후 잔 발레가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온 것은 1775년경. 부건빌의 선대에서 6년 늦기는 했지만 첫 지구 일주를 이룬 여성이 되었습니다.

지구 일주의 다양화와 고속화

비행기가 발명된 이후로는, 지금까지는 해로로 밖에 이루지 못했던 지구 일주가 다양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1924년에는 미 육군의 항공대가 지구 일주 비행을 달성. 그 9년 후인 1933년에는 미국의 조종사 윌리 포스트가 단독으로 지구 일주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이때 일주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7일하고도 19시간. 배와 비교했을 때 비약적으로 짧은 시간으로 지구 일주가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도로의 발달로 대륙간의 이동이 용이해짐에 따라 오늘날에는 도보나 자전거로의 지구일주 도전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구 일주 뱃길에서 회상하는 대항해 시대의 발자취

새로운 세계를 찾아 바다로 나아간 뱃사람들과 같은 항로를 따라가는 지구 일주 여행은 우리의 모험심을 크게 자극합니다. 그중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희망봉은 대항해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곳이지요. 1488년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에 도달했을 때 주변이 너무나도 거친 해역이라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역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컸기에 다시 '희망의 곶'으로 개명하여 그 이름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케이프 포인트 전망대 '룩아웃 포인트'는 인도양과 대서양을 잇는 케이프 반도의 최남단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인기 절경입니다.

피스보트 지구 일주에서 역사가들도 경험했던 풍경을 만나다

지구 일주 유람에서는 마젤란과 연고가 있는 땅에 기항하기도 합니다. 마젤란 해협에 접한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는 마젤란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포에 발을 걸고 하늘을 우러르는 마젤란의 발밑에는 원주민들이 있습니다. 이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필리핀 세부 섬에는 마젤란이 기독교 포교를 위해 세운 '마젤란 크로스'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 십자가에는 영험이 깃들어 있어 부수어 마시면 만병통치약이 된다며 일부를 가져가는 사람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십자가는 파괴되었고 복제품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지구 일주를 달성한 마젤란 함대의 여행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구 일주 4만 킬로미터 항해의 역사

도미니카 공화국은 미국 대륙에 도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세계에서 최초로 발을 디딘 땅입니다. 수도 산토도밍고에는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식민 도시의 모습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교회와 행정 기관들이 들어서있는 중앙 광장에는 격자 모양으로 얽히게 길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식민 도시 계획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또 시내에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상륙 500주년을 기념하여 건설된 등대가 위치해 있고, 콜럼버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구 한바퀴, 4만킬로를 둘러싼 항해는 인류의 항해의 역사와 지구의 크기를 말하는 풍경과 만남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옛사람들의 아득한 여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