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발트의 빛을 찾아서

2021/3/5

탈린(에스토니아) / 리가 (라트비아)

발트해에 접해있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발트 삼국」. 세계사의 정식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적지만 800년 이상의 역사를 조용히 방적해 온 나라들입니다. 지리적, 역사적 공통성 때문에 3국이 일괄로 파악되기 쉽지만, 각각 다른 언어와 독자적인 문화를 길러 왔습니다. 3국 수도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그림책 같은 거리와 번들거리는 돌로 만든 길이 우리를 중세시대로 유혹합니다. 아름다운 건물과 겹쳐진 역사, 그리고 섬세한 기술이 빛나는 수작업에 수많은 여행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들이 거리에 흩어져 있습니다.

비밀의 베일. 그 너머에

발트 삼국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13세기경. 주변 강국들의 지배하에 한자동맹에 가입 그리고 교역 거점이 됨으로써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당시의 흔적은 지금도 발트 국가들에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구시가지를 거닐면 독일, 북유럽,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음식에도 그 문화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에스토니아, 자연을 숭배해 소박하고 너그러운 리투아니아, 그리고 그 양국의 장점을 균형있게 도입한 라트비아가 가지는 기풍까지 모두 각양각색이지요. 그 본모습을 만나기 위해 역사 만나는 거리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중세의 발자취를 찾아서

발트삼국 북쪽에 위치한 나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왔습니다. 우선 도시 전경을 둘러보려고 구시가지 산마루에 있는 톤페어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전망대에서는 마을을 둘러싼 성벽과 탑, 빨간 지붕 집들이 즐비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벽과 가게 앞을 수놓은 문장과 의장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활기찬 라에코야 광장으로 이동합니다. 옛 시청사와 아기자기한 색깔의 건물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탁 트인 하늘 아래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사람들로 붐빕니다. 중세의 의상으로 요리를 서빙하는 웨이터들이 행인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돌로 쌓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립니다. 그 엄숙한 음색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14세기에 건립된 탈린 최고의 성령교회. 이곳은 처음으로 에스토니아어로 설교를 했던 장소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성경 내용을 그려 다른 나라 지배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평온한 분위기를 지닌 채 밖으로 나가면 지금도 시간을 알 수 있는 17세기의 대형 시계가 눈앞에 있습니다. 중세에서 현재로 끝없는 시간을 거듭한 탈린의 거리에서 숨겨진 문을 살짝 열어 본 느낌입니다.

늠름한 자태의 오래된 거리

[발트의 귀부인]이라고 칭송받는 곳은, 유럽의 영향을 받아 클래식한 분위기가 감도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일찍이 한자동맹의 메인 거리로써 한 세기를 풍미했던 발트 삼국 최대의 거리입니다. 가볼 만한 장소로는 유겐트슈티르라 불리는 아르누보의 건축군. 벽을 뒤덮은 자유분방한 장식을 보고 있자면 건물이라기보다 예술같다고 느껴집니다. 그 수는 유럽 제일이라고도 하지요. 그 밖에도 123m의 첨탑이 아름다운 성 페테로 교회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가 융합된 리가 대성당 등 리가는 건축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건물뿐만아니라, 그저 아무 가게 처마끝 장식품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맥주통이나 프라이팬 등 딱 봐도 알 수 있는 것부터 '이게 무슨 가게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곳까지 정말 다양하답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통해 거리문화를 지탱하는 장인들의 기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리가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옛 비행기 격납고를 이용한 신시가지 중앙시장으로, 과거 유산이 살아 숨 쉬는 도시의 부엌으로 탈바꿈하여 아름다운 구시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리가산 토종 맥주를 마시면서 왕래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여행의 여운에 빠져봅니다.

수작업은 전통과 긍지의 결정체

거리 자체가 예술품 같은 발트의 나라들. 선물 구매에 쏟는 시간도 행복하답니다. 예산보다 더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리를 걷다 잡화점에서 전통 무늬가 들어간 손수건을 발견했습니다. 색과 모양은 지방에 의해 계승되고, 짜여진 무늬는 기도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양질의 꿀을 채취할 수 있는 발트 국가에서는 밀랍 양초와 꿀로 만든 비누도 인기입니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각종 물건들은 선물이라기보다, 모진 자연과 다른 나라의 지배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기인한 보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