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해협 - 항해작가가 꼽은 역사 이야기

서지중해

북 아프리카와 스페인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은 과거부터 바다의 요충지로 무수한 문명이 거쳐간 장소입니다. 중요한 요충지인 만큼 셀수 없는 전장의 무대가 되기도 한 지브롤터 해협이지만 현재에는 과거 거쳐간 수많은 문명과 문화가 융합된 인기있는 관광지 이기도 합니다. 지중해의 열쇠라고도 불리는 지브롤터 해협에 관한 이야기를 총 3편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글 : 카나마루 토모요시(항해작가)일본 국내 및 세계 5대륙을 크루즈로 방문한 항해작가. 세계의 크루즈 선을 소개하는 "크루즈 쉽 콜렉션"의 집필과 잡지"크루즈(일본 출판, 해사프레스)"에 기사와 크루즈 레포트 등을 기고중.

헤라클레스 종착의 땅, 지브롤터 해협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헤라클레스. 신화에 의하면 어느날 그는 대양 오케아노스의 최서단에 떠 있는 섬으로 향하는 도중, 아틀라스산을 만나게 된다. 산을 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한 헤라클레스는 괴력으로 아틀란스산을 두 개로 찢어버렸는데, 이렇게 대서양과 지중해가 연결되어 나뉘어진 2개의 산은 후에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지브롤터의 더 록은 그 기둥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헤라클레스에 의해 만들어진 지브롤터 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해양 교통의 요충지로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역사의 무대가 된다.

유명한 여행가가 태어난 도시

지브롤터 해협의 아프리카 쪽에있는 항구 도시 탕헤르. 14세기 초 이곳에서 이슬람의 유명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68 또는 69년)가 태어났다. 그의 생애의 절반을 차지하는 30년간의 여행기간은 서쪽의 북아프리카에서 동쪽의 중국까지의 광대한 범위를 자랑하며, 그 기록은 1355년에 '여러 도시의 신기함과 여행의 경이에 관한 관찰자들에게 선물' 로 정리되었다. 이븐 바투타는 21세에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고 나서는 고향에는 거의 머물지 않았지만, 현재 탕헤르에는 그의 이름을 씌운 거리와 국제공항이 있으며 그 무덤으로 전해지는 백악의 묘 가 조성되어 있어 관광명소로 도시를 알리고 있다.

그라나다 함락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지브롤터 해협의 아프리카 쪽에있는 항구 도시 탕헤르. 14세기 초 이곳에서 이슬람의 유명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68 또는 69년)가 태어났다. 그의 생애의 절반을 차지하는 30년간의 여행기간은 서쪽의 북아프리카에서 동쪽의 중국까지의 광대한 범위를 자랑하며, 그 기록은 1355년에 '여러 도시의 신기함과 여행의 경이에 관한 관찰자들에게 선물' 로 정리되었다. 이븐 바투타는 21세에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고 나서는 고향에는 거의 머물지 않았지만, 현재 탕헤르에는 그의 이름을 씌운 거리와 국제공항이 있으며 그 무덤으로 전해지는 백악의 묘 가 조성되어 있어 관광명소로 도시를 알리고 있다.

그라나다 함락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알함브라 궁전을 건설한 이베리아 마지막 이슬람 국가·그라나다 왕국.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연합 왕국 (나중에 스페인)에 의해 1492년 1월에 점령당함으로써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시기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왕국에 「신대륙 발견 항해」의 스폰서를 찾고 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경~1506년)가 찾아왔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은 이 계획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마침 그라나다 함락에 의해 전쟁비용이 남아 있어 그의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기다림에 지처 다른 스폰서를 그라나다를 떠났으며, 여왕의 전령은 그를 쫒아 극적으로 만나 같은 해의 역사적인 항해가 이루어지게 된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영웅 

18세기초, 공석이 된 스페인 국왕의 자리에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자신의 손자를 앉히려하자 주변국의 반발로 시작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14년) 이후 체결된 것이 위트레흐트 조약(1713년) 이었다. 전쟁 중 영국이 점령한 지브롤터 해협을 영국의 영토로 인정되어 현재에도 지브롤터 해협은 영국의 영토로 되어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를 몇 번이고 곤란하게 한 것이 영국의 장군 존 처칠(1650-1722)로 전쟁의 군공으로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고 알려져 있다. 그 외 그는 훗날 영국의 수상이 되는 윈스턴 처칠, 그리고 유명한 다이아나비의 먼 선조로도 알려져 있다.

야생원숭이의 보호는 영국육군의 중요한 임무

지부롤터에 있는 거대한 바위 "더 록"은 유럽 유일의 야생 원숭이인 바바리 원숭이의 서식지 이다. 1740년 지브롤터에 들여온 원숭이 개체가 정착하여 번성한 것으로 언젠가부터 바바리 원숭이가 지브롤터에서 모습을 감추면 영국도 지브롤터에서 떠나야 한다 라는 전설이 탄생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있는 바바리 원숭이지만, 과거 1900년까지 약 130두에 달하던 원숭이들이 제 2차세계대전 중인 1940년에는 식량부족으로 단 4마리밖에 남지 않는 일이 있었다. 이를 본 당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북 알프스에서 24마리의 원숭이를 들여올 것을 지시, 가까스로 지브롤터에서 바바리 원숭이의 절멸을 막을 수 있었다. 이후부터 원숭이들은 영국 육군이 돌보게 되었고 지금도 중요한 하루 일과로 되어 있다.

모로코 독립을 낳은 국제관리지역 탕헤르

바다의 요새 지브롤터 해협에 접한 모로코의 탕헤르는 주변 세력들의 대립지가 되기 일쑤였다. 1912년 프랑스와 스페인에 의해 모로코는 분리되었으며 탕헤르와 그 주변지역은 유럽 열강에 의한 비무장, 영세중립의 국제관리지역이 되었다. 관세가 없는 자유항구로 번영한 무역, 금융의 중심지로 탕헤르는 크게 번영하였지만 그와 함께 밀수와 마약거래, 매춘 등도 빈번이 일어났다. 경찰과 세관도 다국적인으로 구성되어 빈번히 지휘계통에 혼선이 일어나 범죄가 일어나도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쉽게 일어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탕헤르는 이에 불만을 품고 모로코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끈질긴 투쟁으로 1956년 모로코는 독립을 쟁취하였으며, 탕헤르 또한 모로코에 반환되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지브롤터에서 결혼한 이유 

1969년 3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1940-80)은 오노 요코와의 로맨틱한 결혼식을 위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 후보중 하나였던 프랑스의 파리는 결혼전 2주간 프랑스에서 거주하지 않으면 불가라는 조건으로 이룰수 없었으며 그 대안이 된 것이 지브롤터였다. 당시 두 사람에게 요구된 조건은 여권과 출생증명서의 제출, 그리고 결혼 전후 지브롤터에서 1박을 할 것. 이 간단한 조건과 함께 헤라클레스의 기둥의 경치에 마음이 뺏긴 두 사람은 결국 지브롤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까지 긴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전쟁과 대립의 무대가 되었던 지브롤터 해협이지만 적어도 여행을 하는 동안 만큼은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바랬던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장소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PHOTO: PEACEBOAT, Endo Kazuhide, Isogai Miki, Suzuki Shoichi, AquilaGib /
CC-BY-SA-3.0, Nathan Harig / CC-BY-SA-3.0, shutterstock.com